하루 평균 55명이 성폭행 당하는 나라에서 피의자 얼굴 공개가 중요한가
지난 10일, 굳은 표정의 형사들이 부산 사상구 덕포시장에서 검거된 여중생 강간살인 피의자 김길태를 결박해 언론사 카메라 앞에 세웠습니다. 피해자 이 양 실종 14일 만이었습니다. 그리고 ‘초동 수사 미흡’이란 여론의 질책에 대통령이 갑호비상령을 내린 지 하루 만이었습니다. ‘14일’과 ‘1일’. 차이가 크지요. 그래서였을까요. 경찰은 기자들 앞에서 ‘맨 얼굴’의 김길태를 세웠습니다. 마스크나 모자를 쓴 피의자가 아닌 경찰은 그 ‘얼굴’이 필요했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 규칙’을 어겨가면서요. 강호순과는 본질이 다릅니다. 강호순은 기자들 앞에서 모자와 마스크를 썼었으나, 모 언론에 의해 최초로 공개된 이후, 우후죽순으로 기타 언론사가 그 뒤를 따른 경우입니다. 그리고 전 국민을 분노케했던 김길태의 초췌한 얼굴은, 곧바로 다음 날 언론의 ‘1면’을 장식했습니다. 그 날 <조선일보>의 머릿기사는 ‘더 이상 가려주지 않는다’였습니다.
김길태 검거 직후, 얼굴 공개에 관해 김희웅 사상경찰서장은 “김길태의 얼굴을 언론 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공개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판단을 수사본부에서 내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경찰이 노렸던 것 다음 세 가지겠지요. 1. 김길태 검거가 늦어지자, 애초에 김길태의 얼굴 공개를 계획함으로서 스스로 명분을 만든다. 2. 그 명분을 뒷받침 하면서 ‘국민적 분노’를 얼마든지 조장할 수 있는 언론이 있다. 3. 김길태 개인의 잘못일 뿐이다. 그 ‘판단’은 헌법보다 상위법이었나봅니다. 대신 국민의 ‘법 감정’이나 ‘공공의 이익’ 등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그리고 사건 발생 2일 만에 ‘김길태의 얼굴 공개는 인권침해’라는 진정이 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상태입니다.
이렇게 흉악범 얼굴 공개를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는 크게 두 가지 입니다. 헌법과 피의자의 인권 존중이라는 측면과 국민적 공분을 산 피의자의 얼굴 공개가 또 다른 범죄예방을 위한 공익에 부합한다는 것. 그렇다면 후자의 ‘국민적 공분’은 어떻게 조성되는 것일까요. 바로 ‘언론’에 의해서 입니다. 우리 사회의 실상을 반영하는 ‘언론’의 수준은 김길태 사건으로 대한민국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모 신문은 ‘적법하지 못한 방법’으로 구한 그의 생활기록부, 유년사진을 낱낱이 공개해 그를 대중 처형장 앞으로 끌어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이미 김길태를 만든 사회와 복역 중 한 번도 그에게 성범죄 관련 교육을 하지 않은 교정행정을 잊었습니다. 과녁은 하나고 화살은 수천만 개인 양궁 경기와 같았습니다. 과녁이 하나 생기자, 언론(전국중앙일간지 기준)은 김길태 검거 후 지금까지 기사, 아니 화살 600여개를 쏘아댔습니다.
경찰서 말하는 김길태의 얼굴 공개는 우리네 ‘공익’과 얼마나 부합하고 ‘법 감정’에 얼마나 수렴하는지 절로 의문이 듭니다. 2008년 경기도 서남부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강호순의 얼굴이 최초로 공개된 이후, ‘그 얼굴’이 ‘공익’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언론 관계자에게 묻고 싶습니다. 물론 아직 경찰의 ‘흉악범 얼굴 공개 가이드라인’이 발표되지 않았고 정부의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또 한 번 묻고 싶습니다. 김길태의 얼굴은 강호순, 유영철, 정남규 등 흉악범의 얼굴과 어떻게 다른지도요. 결국, 해마다 반복되는 다른 이름과 다른 얼굴들의 비슷한 몹쓸 짓이 ‘언론’의 이름으로 본질은 뒤로 한 채 호도됩니다. 김길태는 왜 이 양을 강간하고 죽였을까요? 김길태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빈 집에 도망다니며 거주했다던데, 부산 사상구 덕포동 재개발 지구의 면면은 그간 어땠었을까요? 왜 김길태는 11년이나 복역하고 난 뒤에도 또 성범죄를 저질렀나요? 2000년 이후, 한국의 성범죄는 해마다 늘어 지난 해 약 2만 여건에 육박했다던데, 그간 강호순의 얼굴 공개는 어떤 역할을 했나요? 성범죄자 들은 범죄 행위 이전에 신상 공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까요?
얼굴 공개는 ‘공익’이란 이름하에 시행된 대중들의 호기심 충족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호기심이 충족되면, 그 얼굴과 사건은 잊혀집니다. 국민의 호기심은 언론의 좋은 먹잇감이 되지요. 김길태의 사진이 아무런 원칙도 없이 경찰의 자의에 의해 이렇게 보도 되면, 앞으로 있을 흉악 범죄 이후 기자들은 피의자 사진부터 찾아 보도할 테지요. 거기서 또 보도 경쟁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김 기자는 고등학교 졸업 사진 구했다는데, 이 기자는 앨범 제대로 안 뒤질거야?’ 데스크가 이런 주문할지 누가 압니까.
결론은 자명합니다. ‘얼굴 공개 논란’을 조장하는 것보다 김길태의 탄생 단초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언론이 할 일입니다. 언론은 지금 김길태 사건에 관한 호들갑이나 생중계를 할 때가 아닙니다. 정부가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소홀하다면, 언론은 지적해야 합니다. 김길태 사건 기사를 보면 기시감이 드는 것이 한 두 개가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하루 평균 약 55명이 성폭행이나 강간을 당하는 이 나라에서 언론의 피의자 얼굴 공개는 어쩌면 ‘아무 짝에 쓸모 없는 배부른 소리’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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